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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리칼럼(이슈 & 사건)

운명학/사주명리학에서 보는 행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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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최대 목표 행복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는 물론이고, 개개인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운명학에서 보는 행복은 무엇일까?

운명학은 사주구조를 통해 개인의 빈부귀천의 정도를 따질 수 논리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귀영화가 운명학에서 추구하는 행복은 아니다.

수 많은 사람의 사주구조를 분석하다보면, 한 세상 마음 편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타고한 명은 자동차로 비유하고, 지나가는 도로는 운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것을 합하며 명운 또는 운명이라고 한다.

애초에 부여된 자동차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삐까번쩍한 신차로 태어난 사람부터, 타이어 4개가 모두 펑크난 자동차로 태어난 사람까지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도 마찮가지로 다양하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하지만, 좁은 시골길을 지나거나, 운이 나쁘면 맹지에 막혀 후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운명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실로 단순하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차가 엑셀이 있어 전진과 후진을 할 수 있고, 때때로 멈출 수 있는 브레이만 있는 정도면 일단 명이 좋은 것이다.

사람마다 엑셀이 고장나거나,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량같은 사람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겉 외양이나 부품 상태가 어떻든 일단 운행 가능한 차량이라면 그 사람은 일단 행복의 조건을 충족했다고 본다.

쉽게 표현하면, 생계를 유지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직업과 건강이 있다면 행복의 제1 조건을 구비하였다고 본다.

두 번째는 자신의 차량이 가고 있는 도로 또는  날씨의 상태이다.

운이란 소주기 1년, 중주기 10년, 대주기 30년 단위의 주기성을 갖는다.

가장 운 좋은 사람은 30년 대주기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 있는 사람이다.

그 반대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일단 막히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길 위에 있다면 행복의 제2조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

운명학에서 보는 행복은 좀 보수적 평가를 받는다.

큰 병 없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소 저고도에 있다고 하더라도 행복의 범주 안에 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건강을 유지할 정도로 운동, 직장활동, 사업활동 등 건전한 활동을 하자.

그리고 분명히 살다보면 길이 막혀 전진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이 때는 우회하거나 길이 열릴 때까지 다소 비참한 상태를 소탈하게 버틸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개인의 막힌 운은 하느님, 부처님 등 세상의 그 어떤 신도 뚫을 수 없다.

우회, 대기, 인내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길 위에 있는지 스스로 찾아보고 그것이 어렵다면 명리연구가의 의견도 참고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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