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명리칼럼(이슈 & 사건)

영화 노량, 이순신 장군의 새로운 전사 이유

반응형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전사한 이유의 구체적 내막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가지고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마 이번에 개봉한 영화 노량이 그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것 같아 만시지탄의 느낌이 든다.


1.  명 지원군의 소극적 태도
    
  명 육군 총사 유정, 수군 총사 진린 모두 왜군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왜군의 퇴군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이순신과 함께 조명 연합군을 형성한 진린 역시 고니시 유키나가 주둔한 순천 왜교성 공략에 소극적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순천만 앞바다에서 사천 왜성에 주둔한 시마즈 요시히로와 순천 왜성의 고니시의 협공을 받을 수 있는 위험 속에 있었다.


이 협공의 위험이 명 진린 총사를 더욱 위축시키고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대책은 사천왜성 사미즈 왜군부터 먼저 격파하고  순천왜성 고니시 왜군을 격파하겠다는 것이었다.

2.  명 수군의 예상 외의 참전

  명 수군의 이순신 장군의 왜군 격파에 대한 열정을 보고 마지못해 순천만 앞바다 북쪽 해안에 군선만 띄우고 연합작전은 거부하겠다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아무도 진린 총사는 전쟁상황이 조선군에 유리하게 돌아갈 때 참전하여 전공을 나눠가지겠다는 심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데, 소극적이고 탐욕적인 진린과 달리 다혈질이었던 부총사 등자룡은 참지 못하고 독단으로 근접해 있던 왜군을 공격하였고, 왜군의 월선침투에 당해 선상에서 전투 중 전사하였다.


왜군은 명군의 참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진린 총사의 함대까지 공격하였고, 진린은 위험에 처하였다.

이순신은 명 수군 총사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지원병을 보내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3.  전쟁 양상의 변화

조선수군과 왜수군의 전투방식은 달랐다. 왜군의 주특기는 월선하여 선상 전투하는 방식이었다면, 조선군은 총통을 활용한 포격전이었다.

조선군의 전투방식으로 싸우면 왜군의 조총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는 거리에서 조선군은 총통 포격을 통해 왜군을 제압할 수 있다.


이런 유리한 전투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명군의 소극적 태도에 이은 갑작스러운 참전 그리고 부족한 전투능력이었다고 보여진다.


애초에 명군이 순천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조선수군에 혼란을 주지 않고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수군은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것 외, 명군을 구원해야 하는 부수적인 업무를 떠안게 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 와중에서 조선 함대도 왜국 함대와 뒤섞여버리는 혼전 양상이 되어 버렸다.


4. 이순신 전사의 실체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생존했다고 해도 선조의 또다른 모략으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이순신은 그런 위험 부담 때문에 자살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분분하다.



  

반응형